답부터 말하겠다. 이 제안의 핵심은 25조라는 금액이 아니라 “2027년 말까지”라는 시한이다. 한전에 현금이 필요한 것은 맞다. 다만 금액과 기한을 저렇게 정한 이유는 필요액이 아니라, 2027년 12월 31일에 닫히는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 25조원을 미리 내달라고 제안했다는 사실이 2026년 9월 초 알려졌다. 언뜻 보면 빚 많은 공기업이 대기업에 손을 벌린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조건을 뜯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 당사자가 각각 다른 것을 얻으려 하고, 그 판에서 빠져 있는 네 번째 당사자가 있다.
이 글은 네 가지에 답한다. ①정확히 무엇이 제안됐나 ②왜 하필 2027년인가 ③한전과 삼성·SK가 각각 얻는 것은 무엇인가 ④이 거래를 지켜보는 민간발전사의 셈법은 어떤가.
| 질문 | 한 줄 답 |
|---|---|
| 확정된 건가 | 아니다. 한전이 “참여 여부·이자율·규모·기간 모두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
| 한전이 얻는 것 | 부채비율이 아니라 사채발행배수. 2027년 말 한도 특례 일몰을 넘기려는 것 |
| 삼성·SK가 얻는 것 | 이자보다 용인·호남 클러스터 전력 공급 확보 |
이미지: Jack Hill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팩트 — 정확히 무엇이 제안됐나
답부터: 5년치 요금을 1년 안에 몰아 받고, 그 잔액에 이자를 주는 구조다.
| 항목 | 내용 |
|---|---|
| 총 규모 | 25조원 (삼성전자 20조 + SK하이닉스 5조) |
| 산정 기준 | 지난해 전기요금(삼성 4조 1,000억 · SK하이닉스 9,000억)의 5년치 |
| 대상 기간 | 2027~2031년 요금 |
| 납부 방식 | 월 2조원씩 약 12개월, 2027년 말까지 |
| 정산 | 선납금에서 매달 전기요금 차감 |
| 이자 | 잔액에 대해 국고채 + 15bp, 6개월마다 지급 |
| 이자 지급 형태 | 현금 대신 전기요금에서 차감하는 방안 검토 |
| 자금 용도 |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송·변전망 건설 |
| 확정 여부 | 미확정 — 참여 여부·이자율·규모·기간 모두 협의 중 |
출처: 머니투데이 · 이데일리 · 뉴스토마토 (2026년 9월 2~3일 보도)
여기서 눈여겨볼 숫자가 국고채 + 15bp다. bp는 0.01%포인트를 뜻하니 국고채 금리에 0.15%포인트를 얹는다는 얘기다. 이 수준이 이 거래의 성격을 드러낸다. 한전이 시장에서 회사채를 찍을 때 물어야 하는 금리보다 낮으면 한전에 이득이고, 삼성·SK가 여유자금을 굴려 얻는 수익률보다 높으면 기업에 이득이다. 그 사이 어딘가를 찾는 협상인데, 15bp라는 얇은 가산금리는 이 거래가 순수한 자금 조달 경쟁이 아니라는 신호다. 돈보다 다른 걸 주고받는 거래라는 뜻이다.
박창률 한전 기획처장은 이 제안을 두고 “5년 치 전기요금 25조원을 선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왜 하필 2027년 말까지인가 — 한전채 절벽
답부터: 2027년 12월 31일에 한전채 발행한도 특례가 끝난다. 이 날짜 하나가 제안 일정 전체를 설명한다.
한국전력공사법은 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로 정해 두고 있다. 그런데 2022년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내며 한도를 넘길 위험이 커지자, 국회가 법을 고쳐 이 배수를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5배(긴급 시 6배)로 올렸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 구분 | 금액 |
|---|---|
| 자본금·적립금 (2025년 말) | 24조 3,000억원 |
| 현행 한도 (5배) | 121조 3,000억원 |
| 6월 말 사채 잔액 | 71조 5,353억원 |
| 2028년 한도 (2배) | 48조 6,000억원 |
출처: 이데일리 — 한전, 5조 흑자에도 내년 말 ‘한전채 절벽’ 예고. 자본금·적립금은 반올림 표기라 단순히 5배·2배를 곱한 값과 소폭 차이가 난다.
가운데 막대(현재 잔액 71.5조)가 오른쪽 막대(2028년 한도 48.6조)보다 크다. 이게 ‘한전채 절벽’이라 불리는 상황이다.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새 채권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한도가 잔액보다 작으면 갈아탈 수가 없다. 업계에서는 사채뿐 아니라 차입금 전체를 기준으로 “2027년 말까지 차입금 40조원 이상을 상환하지 못하면 급격한 요금 인상이나 투자 급감 같은 극단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제 제안 일정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보인다. 월 2조원 × 12개월 = 24조원. 한전은 이 돈을 2027년 말까지 받으면 약 1년치 차입을 대체하고 사채발행배수를 2배 이내로 낮출 수 있다고 본다. 특례가 끝나는 그날 이미 2배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절벽이 절벽이 아니게 된다.
즉 이건 자금 조달이되, 법정 한도 밖에서 하는 자금 조달이다. 금액을 25조로, 기한을 2027년 말로 정한 것은 필요액이 아니라 시한이 결정했다. 실제로 잔액 71.5조에서 2028년 한도 48.6조를 빼면 22.9조가 부족한데, 선납 25조가 그 구멍을 거의 정확히 덮는다.
한전이 얻는 것 — 부채비율이 아니라 사채발행배수
답부터: 부채는 줄지 않는다. 줄어드는 것은 법정 한도에 걸리는 부분뿐이다.
이 구분이 이 사안에서 가장 자주 오해받는 대목이다. “빚 210조인 한전이 25조를 받아 빚을 갚는다”는 그림은 틀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양지 전력시장과장이 정확히 이 지점을 짚었다. 그는 선납제가 한전의 사채발행배수를 2027년 말까지 2배 이내로 낮추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선납금이 회계상 부채로 잡히는 만큼 다른 조달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무부처 당국자가 “배수는 낮아지지만 부채는 부채”라고 정리한 셈이다. 미리 받은 요금은 아직 제공하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대가이므로 회계상 선수금, 즉 부채다. 25조를 받아도 총부채는 그대로다. 부채의 이름표가 ‘사채’에서 ‘선수금’으로 바뀔 뿐이다.
그런데 한전에는 그 이름표가 결정적이다. 사채발행한도는 ‘사채’만 세기 때문이다. 선수금은 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크기의 부채라도 선수금으로 들고 있으면 2027년 말 특례 일몰을 통과할 수 있다.
정리하면 한전이 얻는 것은 셋이다.
첫째, 법정 한도 밖의 조달 경로. 앞서 본 그대로다. 이게 가장 크다.
둘째, 조달비용 절감. 한전은 올해 원화 장기사채를 평균 3.74%에 발행했다. 국고채에 15bp만 얹는 조건이라면 그보다 낮다. 25조를 1년 정도 굴린다고 보면 이자 차이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아껴진다.
셋째, 투자 재원 확보. 한전은 6월 말 기준 연결 총부채 210조 7,000억원(작년 말 205조 6,000억원)을 안고 하루 이자로만 115억원을 쓴다. 상반기에만 이자비용이 2조 1,000억원이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 4조 9,127억원을 냈지만 전력망 투자 수요가 그보다 크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보내려면 송·변전망을 새로 깔아야 하는데 그 돈이 없다.
삼성·SK가 얻는 것 — 이자보다 전기
답부터: 15bp 이자는 부수적이다. 진짜 목적은 공장에 전기를 끌어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25조를 1년 앞당겨 내는 것은 그 자체로는 손해다. 그 돈을 다른 데 굴리면 국고채+15bp보다 나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삼성전자 정도의 신용도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병목이 하나 있다. 전기다.
용인과 호남에 짓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기가와트급 전력을 필요로 한다. 공장을 아무리 빨리 지어도 송·변전망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가동할 수 없다. 그리고 송전선로는 공장보다 짓기 어렵다. 노선을 정하고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토지를 확보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걸리고, 돈이 없으면 시작조차 못 한다.
여기서 선납의 의미가 달라진다. 기업은 자기가 쓸 전기를 나르는 설비의 건설비를 미리 대는 셈이 된다.
사실 한국 전력망에는 “쓸 사람이 낸다”는 원칙이 이미 문서로 있다. 한전 전기공급약관은 고객이 새로 전기를 쓰거나 계약전력을 늘릴 때 배전선로 공사비를 고객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한다. 이른바 시설부담금이다.
그리고 이 원칙이 대규모로 적용된 전례의 당사자가 바로 이번 거래의 한쪽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 전기를 넣는 서안성~고덕 송전선로(23.86km, 철탑 35기) 는 삼성전자가 공사비를 전액 부담했다. 사업비 3,490억원에 지중화 추가 비용 482억원을 더해 총 3,900억원 규모였고, 2013년 건설 계획 이후 주민 반대로 10년을 끌다 2023년 9월 12일에야 준공됐다. 당초 준공 예정은 2021년 6월이었다.
그래서 이번 25조는 새로운 원칙이 아니라 기존 원칙의 규모 확대다. 다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시설부담금은 돌려받지 않는 비용이지만, 선납금은 이자까지 붙여 요금에서 되돌려받는 대여다. 같은 “쓸 사람이 낸다”로 보여도 성격이 다르다. 그 대가로 받는 건 이자가 아니라 일정에 대한 확실성이다. 게다가 이자를 현금이 아니라 전기요금 차감으로 받는 방안이 거론되는데, 이건 사실상 전기요금 할인이다. 앞으로 5년간 쓸 전기를 조금 싸게 사두는 구조인 셈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전이 사려는 것은 한도이고, 기업이 사려는 것은 이자가 아니다. 15bp라는 얇은 가산금리가 그 증거다. 다만 기업이 그 대가로 정확히 무엇을 받는지 — 착공 시점 보장인지, 요금 할인인지, 둘 다인지 — 는 아직 협의 중이고, 이 거래의 실질은 거기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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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에 없는 네 번째 당사자 — 민간발전사
답부터: 민간발전사는 이 거래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결과의 영향은 받는다. 그리고 그들의 위치는 이미 불편하다.
이 대목이 뉴스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데, 전력시장의 구조를 보면 왜 중요한지 드러난다.
먼저 숫자 하나. 민간발전사는 이미 한국 최대의 발전 사업자다.
| 구분 | 2025년 발전량 |
|---|---|
| 민간발전 | 21만 5,827GWh |
| 발전 5사(한전 자회사) | 19만 4,903GWh |
출처: 아시아투데이 — 민간발전, 발전5사 통합에 긴장
한전이 2025년 사들인 전력 중 발전 5사 물량은 31.1%에 그친 반면, 민간발전·신재생 사업자 등 ‘기타회사’ 구입 비중은 37.3%에 이른다. 발전 5사 비중은 2023년 34.5%, 2024년 32.6%, 2025년 31.1%로 매년 내려왔다. 그런데 발전 대가를 정하는 권한은 없다. 한전이 사실상 유일한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수익 구조도 겉보기와 다르다. 2021~2025년 5년간 한전이 누적 36조원의 영업손실을 낸 사이, 발전 5사는 6조 6,000억원, 한국수력원자력은 6조 3,000억원, 민간 가스발전사 12곳은 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대비 때문에 “한전은 적자인데 발전사는 흑자”라는 지적이 반복된다. 다만 민간발전 전체가 넉넉한 것은 아니다. 민간 석탄발전 4개사의 2025년 실적은 매출 3조 4,200억원에 순이익 669억원으로 순이익률 2.0%, 부채비율은 416%에 달한다.
여기에 지금 세 가지 압력이 겹쳐 있다.
첫째, 발전 5사 통합이다. 정부는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을 하나로 묶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완료되면 설비용량 53GW의 단일 최대 발전사가 나온다. 민간발전협회 관계자는 **“통합 발전사가 출범할 경우 원가 산정이 공공 발전사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라고 말한다.
둘째, 정산 제도 개편이다. 정부는 LNG 발전 이익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으로 매입가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셋째, 소매요금 인하 압력이다. 소매요금을 내리면 그 부담이 전력구입비 축소로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걱정이다.
이 상황에서 한전이 25조원의 실탄을 확보하면 어떻게 될까. 직접적인 정산 규칙 변화는 없다. 총부채도 그대로다. 그래서 이 거래가 곧바로 민간발전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순서의 문제는 남는다. 민간발전사가 실제로 걱정하는 것은 이 거래가 아니라 발전 5사 통합과 정산 제도 개편이다. 그리고 한전이 2027년 시한을 넘기고 나면, 그동안 시한에 밀려 있던 그 개편 논의를 꺼낼 여력이 생긴다. 이 거래가 바꾸는 것은 규칙이 아니라 규칙을 손볼 순서다.
그리고 하나 더. 발전량 기준 한국 최대 공급자가 민간발전사인데, 전력망 건설비를 대는 자리에는 반도체 대기업이 불려 왔다. 이 배치 자체가 지금 전력시장에서 누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준다.
무산되면 어떻게 되나 — 남은 선택지
답부터: 선택지는 넷인데, 넷 다 한 번씩 써 봤거나 그 정치적 비용을 이미 확인한 길이다.
이 제안이 확정되지 않으면 한전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들이 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지를 보면, 선납 제안이 얼마나 궁여지책인지도 드러난다.
① 전기요금 인상. 가장 정공법이고 가장 어렵다. 다만 “요금을 못 올린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정부는 2022년 이후 여섯 차례 요금을 올렸고, 특히 산업용은 2021년 kWh당 105.5원에서 3년간 68.7% 올랐다. 마지막이 2024년 10월 24일 평균 9.7% 인상(대용량 165.8→182.7원 10.2%, 중소기업용 164.8→173.3원 5.2%)이었고, 그때도 주택용·일반용은 동결했다. 일반용 요금이 13개 분기 연속 동결이라는 것은 그런 뜻이다. 못 올린 게 아니라 올릴 수 있는 쪽에만 올렸다.
그리고 지금 선납을 요청받은 두 회사가, 그 68.7% 인상을 이미 감당해 온 산업용 최대 수요자다. 같은 주머니에 두 번째로 손을 뻗는 셈이다. 다른 점은 하나다. 요금은 일방적으로 매길 수 있지만 선납은 상대가 거절할 수 있다. 조건이 후해야 하는 이유이자, “참여 여부·이자율·규모·기간 모두 미확정”이라는 답이 나오는 이유다.
② 자산 매각. 이미 해본 길이다. 한전은 앞서 부동산과 해외 발전소 지분을 정리해 6조원 규모의 자구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문제는 팔 만한 자산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25조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③ 한전법 재개정. 사채발행한도 특례를 2030년 이후로 늘리거나, 5배에서 2배로 한 번에 떨어뜨리는 대신 단계적으로 줄이자는 안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된다. 통과된 전례가 있으니 불가능한 길은 아니다. 다만 2022년 12월 그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한 차례 부결됐다가 여야가 재추진에 합의해 그달 말에야 통과됐고, 그 과정에서 붙은 것이 바로 “2027년 12월 31일까지”라는 일몰 조항이다. 지금 한전을 쫓는 시한은 시장이 정한 것도 재무 상태가 만든 것도 아니라, 그때의 협상 조건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시한을 다시 미루는 것이다.
④ 정부 재정 투입. 전력망을 국가 인프라로 보고 재정으로 대는 방식이다. 다른 나라에서 쓰는 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한전이 상장사라는 점이 걸린다. 주주가 있는 회사에 재정을 넣는 것은 별도의 논쟁을 부른다.
넷을 나란히 놓고 보면 선납 제안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요금은 못 올리고, 팔 자산은 부족하고, 법 개정은 시간이 걸리고, 재정은 논쟁적이다. 그 틈에서 나온 것이 “쓸 사람이 미리 내라”였다. 그러니 이 제안이 무산돼도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위 넷 중 하나로 돌아갈 뿐이다.
지켜볼 일정은 두 개다. 하나는 이 협의의 타결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한전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다. 둘 다 안 되면 2027년 하반기에 요금 논의가 강제로 테이블에 오른다.
쟁점 — 무엇이 문제로 지적되나
답부터: 정부 안에서도 이미 세 가지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양지 전력시장과장이 짚은 것은 이렇다.
1. 과도한 금리. 이자를 후하게 주면 결국 그 부담은 다른 전기 사용자에게 간다. 한전의 수입은 전기요금이고, 전기요금은 모든 소비자가 낸다.
2. 중도 환불. 기업이 중간에 자금이 필요해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25조 규모에서 이런 요구가 나오면 한전의 자금 계획이 통째로 흔들린다.
3. 대기업 특혜 논란. 두 기업만 이런 조건을 받는다면, 왜 다른 대량 수요자는 안 되는지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돈이 많아서”라면 설득이 어렵다.
여기에 하나를 더 얹을 수 있다. 회계상 부채라는 점이다. 앞서 봤듯 선납금은 부채로 잡힌다. 그래서 이 방안은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대책이 아니라 특정 한도를 우회하는 대책이다. 김 과장이 다른 조달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방법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So What — 이 사안이 드러내는 것
정리하면 이렇다.
1. 확정된 것은 없다. 금액도 금리도 참여 여부도 협의 중이다. 지금 나온 숫자는 한전의 제안이지 합의가 아니다.
2. 이건 부채 대책이 아니라 한도 대책이다. 총부채는 그대로고, 사채발행배수만 낮아진다. 2027년 말 특례 일몰이라는 시한이 이 제안의 형태를 전부 결정했다.
3. 양쪽이 사는 물건이 다르다. 한전은 시간을, 기업은 전력 공급 일정의 확실성을 산다. 15bp라는 얇은 가산금리가 그 증거다.
4. 민간발전사는 이 판에 없다. 이미 최대 공급자인데 가격 결정권이 없고, 이번 거래로 구매자의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협상 위치는 더 밀린다.
마지막으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이 사안이 드러내는 건 따로 있다.
전력망 건설비를 누가 대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답을 갖고 있다. 다만 이번 요구가 그 답의 규격을 넘어섰다.
전통적인 답은 셋이었다. 요금으로 걷거나, 세금으로 대거나, 빚으로 당겨쓰거나. 여기에 앞서 본 시설부담금이 네 번째로 있었다. 그런데 요금은 산업용에 몰아 올린 끝에 더 밀기 어려워졌고, 재정은 다른 데 쓸 곳이 많고, 빚은 2027년 말에 한도가 닫힌다. 그리고 시설부담금은 배전선로 수준의 비용을, 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개별 고객에게 물리는 제도다. 이번에 필요한 것은 그 수백 배 규모의 송·변전망이고, 방식은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대여다. 제도의 이름은 비슷한데 크기와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아직은 전국이 같은 요금표를 쓰는 전력망에서, 돈을 낸 사람과 안 낸 사람이 같은 망을 쓰는데 대가는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자를 요금 할인으로 준다는 발상이 이 질문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결국 누군가는 그 할인만큼을 더 내야 한다. 그게 다른 산업용 사용자인지, 일반 가정인지, 아니면 미래의 요금 인상으로 넘어가는지가 이 제안에서 아직 답해지지 않은 부분이다. 협의가 진전되면 지켜볼 지점은 금리 숫자가 아니라 바로 이 배분 방식이다.
이 글은 특정 종목·자산에 대한 투자 조언이 아니다. 공개된 보도와 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해설이며, 인용된 수치는 각 출처의 보도 시점 기준이다. 이 사안은 협의 중인 제안으로 조건이 변경될 수 있다.
참고 자료
- 머니투데이 — 한전, ‘삼전닉스’에 25조 요금 선납 제안 — 제안 규모·산정 기준·이자 지급 방식·미확정 사항
- 이데일리 — 한전, 삼전닉스에 25조원 전기요금 선납 제안 — 2027~2031년 5년치, 12개월 분납 구조
- 뉴스토마토 — 반도체기업 전기료 3~5년치 선납 제안 — 박창률 한전 기획처장 발언, 국고채+15bp, 사채발행배수 2배 계산, 김양지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시장과장 지적
- 이데일리 — 한전, 5조 흑자에도 내년 말 ‘한전채 절벽’ 예고 — 발행한도 특례와 2027년 말 일몰, 잔액·한도 수치
- 아시아투데이 — 민간발전, 발전5사 통합에 긴장 — 민간 발전량, 민간발전협회 우려, 석탄발전 4사 실적
- 뉴스트리 — “한전 적자인데 발전사는 흑자” — 2021~2025년 한전 손실과 발전사 이익 대비
- 뉴시스 — 한전, 3분기 전기료 동결 결정 — 13개 분기 연속 동결
- 한국경제 — 한전, 부동산·해외발전소 매각 착수 — 6조원 규모 자구책
- 이투데이 — 발전5사, 전력거래 비중 10년 새 ‘반토막’ — 한전 전력구입 중 발전5사 비중 31.1%, 기타회사 37.3%
- 헤럴드경제 — 한전, 상반기 영업익 4.9조에도 부채 211조·하루 이자 115억원 — 연결 총부채·이자비용
- 전자신문 — 산업용 전기요금 9.7% 인상, 3년간 60% 이상 상승 · 정책브리핑 —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 동결 — 2024년 10월 산업용 인상과 3년 68.7%
- 한국경제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력공급 숨통, 10년 걸린 송전선로 준공 · 파이낸셜뉴스 — 서안성~고덕 지중화 482억 부담 — 서안성~고덕 사업비와 준공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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