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를 올리면 무역이 무너지고, 무역이 무너지면 세상이 험해진다. 요즘 관세 뉴스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이야기다. 근거로는 늘 같은 사건이 소환된다.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

이 비유는 유용하다. 그런데 정작 그 사건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상당히 다르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겠다. 1930년대에 무역을 무너뜨린 주범은 관세가 아니었다. 관세는 조연이었다. 주연은 금본위제였고, 이것이 오늘날 경제사학계의 주류 해석이다. 그런데도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관세가 대공황을 키웠다”는 문장이 돌아다닌다.

이 글은 그 오해를 정리하는 1편이다. 2편에서는 그렇다면 세계가 어떻게 블록으로 쪼개졌는지를, 3편에서는 그 경로가 2026년의 관세·수출통제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다룬다.

The storefront sign reads "Free Soup Coffee & Doughnuts for the Unemployed." 이미지: Unknown autho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경제학자 1,028명이 말렸는데 그냥 밀어붙였다

1930년 6월 17일,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했다. 상원 재정위원장 리드 스무트와 하원 세입위원장 윌리스 홀리의 이름을 딴 법이다.

서명 한 달 전인 1930년 5월, 미국 경제학자 1,028명이 반대 성명에 서명했다. 어빙 피셔, 폴 더글러스, 프랭크 타우식 같은 당대 최고 학자들이 조직한 성명이었다. 최종적으로는 1,250명 넘게 서명이 모였다. 요지는 단순했다. 지금 관세를 올리면 상대국이 보복하고, 그러면 미국 수출업자와 농민이 먼저 다친다는 것이었다.

성명은 무시됐다. 그리고 실제로 캐나다·프랑스·스페인·스위스·이탈리아 등이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히 해 둬야 한다. 보복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것이 정말 스무트-홀리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학계에서 갈린다. 미국 국무부 역사실도 “이 관세가 외국의 보복 물결을 불러왔는지를 두고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고 명시한다. 흔히 인용되는 “수십 개국이 일제히 보복했다”는 서술은 근거가 생각보다 얇다.

그런데도 대중적 서사는 여기서 곧장 결론으로 건너뛴다. “그래서 세계 무역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이 인과관계가 얼마나 성립하는지 숫자로 확인해 보자.

”관세 20% 인상”이라는 숫자부터 틀렸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 “평균 관세를 20% 올렸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두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고, 어느 쪽으로 읽어도 정확하지 않다.

정확한 수치는 이렇다.

기준1929년이후변화
과세 대상 수입품 평균 관세율40.1%59.1% (1932년)+19.0%p
전체 수입품 평균 관세율13.5%19.8% (1933년)+6.3%p

출처: Smoot–Hawley Tariff Act, Wikipedia 및 인용된 미국 통계

같은 관세, 두 개의 숫자 — 무엇을 분모로 놓느냐의 문제 평균 관세율(%) · 왼쪽 1929년, 오른쪽 인상 후 과세 대상 수입품만 40.1% 59.1% 전체 수입품 무관세 포함 13.5% 19.8% 1933년 미국 수입의 63%는 애초에 관세가 붙지 않았다
"20% 인상"이라는 표현이 통용된 이유는 두 숫자가 섞여 쓰였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대공황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작다.

여기서 핵심은 아래쪽 숫자다. 1933년 미국 수입의 63%는 애초에 관세가 붙지 않는 품목이었다. 커피, 고무, 주석, 생사 같은 것들이다. 미국에서 나지 않으니 관세를 매길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스무트-홀리가 손댄 것은 미국 수입의 대략 3분의 1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무너진 것은 전체였다.

한 가지 더 짚을 게 있다. 스무트-홀리는 자유무역 국가가 갑자기 문을 닫은 사건이 아니었다. 8년 전인 1922년 포드니-매컴버 관세법이 이미 과세 대상 평균 약 38.5%, 전체 평균 약 14%로 관세를 올려 놓았고, 그리고 몇 해 뒤 프랑스가 미국산 자동차 관세를 45%에서 100%로, 스페인이 대미 관세를 40% 올리며 보복했다. 1929년 수치(40.1% / 13.5%)와 거의 같다. 1930년의 미국은 저관세국이 아니라 이미 고관세국이었다. 스무트-홀리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서 있던 벽 위에 한 단 더 얹은 것이었다.

무관세 품목도 똑같이 무너졌다

미국의 무역 붕괴 규모는 이렇다.

항목1929년1933년변화
미국 수입44억 달러15억 달러-66%
미국 수출54억 달러21억 달러-61%
세계 무역 (1929→1934)——약 -66%

출처: Smoot–Hawley Tariff Act, Wikipedia · 미국 국무부 역사실 — Protectionism in the Interwar Period

미국 수출입, 4년 만에 3분의 1 토막 10억 달러 · 축은 0부터 0 20 40 60 44 15 수입 −66% 54 21 수출 −61% 연한 막대 1929년 · 진한 막대 1933년
관세가 걸린 건 수입의 3분의 1인데, 붕괴는 전체에서 일어났다. 산수가 맞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인과 설명이 삐걱거린다. 관세가 무역을 죽였다면, 관세가 붙지 않은 63%의 품목은 상대적으로 멀쩡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 돈이 없었다. 대공황으로 소득이 무너졌고, 소득이 무너지면 관세가 0%든 60%든 수입은 줄어든다. 관세는 이미 굴러떨어지고 있던 눈덩이에 얹힌 무게였지, 눈덩이를 굴린 손은 아니었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통화주의 경제학자들이 스무트-홀리를 대공황의 “부차적 원인”으로만 본 이유가 여기 있다. 정책적 실책이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데는 대부분 선을 긋는다.

진짜 범인 — 금 족쇄

경제사학계가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금본위제다.

배리 아이컨그린의 『황금 족쇄(Golden Fetters)』가 이 해석의 대표작인데, 제목 자체가 논지를 요약한다. 금본위제는 각국 통화의 가치를 금에 못 박아 두는 제도다. 안정적으로 들리지만, 불황이 오면 지독한 함정이 된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경기가 나빠지고 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정부는 금 보유고를 지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통화를 조여야 한다. 불황에 긴축을 해야 하는 구조다. 지금이라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 상황에서, 정확히 반대로 움직여야 했다.

한 나라가 그러면 다른 나라도 따라간다. 자국 통화를 지키려면 같이 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불황을 완충해야 할 통화정책이 불황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얹혀 있었다. 1차대전이 남긴 배상금과 전채(戰債)다. 아이컨그린이 정리했듯, 1924년 도스안 이후 세계 금융은 기묘한 순환으로 돌아갔다. 미국 자본이 독일에 대출되고, 독일이 그 돈으로 배상금을 내고, 영국·프랑스가 그 배상금으로 미국에 전채를 갚는 구조였다. 문제는 그 대출 대부분이 단기였다는 점이다. 1928~29년 미국 자본이 발을 빼자 고리가 끊겼다. 후버 대통령이 1931년 6월 20일 배상금과 전채를 1년 유예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해 5월 오스트리아 크레디트안슈탈트, 7월 독일 다나트방크가 무너진 배경이 이것이다.

증거는 탈출 순서에서 나온다. 금본위제를 일찍 버린 나라가 먼저 회복했다.

국가금본위제 이탈이후
영국1931년 9월 19일통화정책 재량 회복, 유럽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
독일·오스트리아1931년 7~10월금 평가는 명목상 유지했으나 태환을 정지하고 외환통제로 사실상 이탈
미국1933년 3월루스벨트 취임 직후 이탈, 회복 시작
벨기에1935년금블록에서 먼저 이탈
프랑스·네덜란드·스위스1936년 9월삼국통화협정을 계기로 금블록 해체, 회복이 가장 늦음

출처: Gold standard, Wikipedia

27개국을 대상으로 한 2024년 『American Economic Review』 게재 연구도 금본위제 이탈이 대공황 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결론을 재확인했다. 이 순서에서 눈여겨볼 것은, 관세를 먼저 내린 나라가 아니라 금을 먼저 버린 나라가 살아났다는 점이다. 영국은 금을 버린 뒤에도 오히려 관세를 올렸다(이 이야기는 2편에서 다룬다). 그런데도 회복했다.

Bundles of newspapers bound together, showcasing vintage reading material. Photo by HONG SON on Pexels

그러면 관세는 무죄인가 — 아니다, 죄목이 다르다

여기서 성급하게 “관세는 문제가 없었다”로 넘어가면 안 된다. 관세에는 금본위제에 없는 성질이 하나 있었고, 그 성질이 훨씬 오래 갔다.

금본위제 이탈은 혼자 하는 일이다. 관세는 둘이 하는 일이다.

영국이 1931년에 금을 버렸을 때, 그건 영국의 결정이었다. 다른 나라가 화를 낼 수는 있어도 “영국이 우리를 겨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관세는 다르다. 관세는 품목을 지목하고, 품목은 곧 나라를 지목한다. 미국이 스위스 시계 관세를 올리면 스위스는 그것을 자국을 향한 조치로 읽는다. 그리고 보복한다.

즉 관세의 진짜 파괴력은 경제적 손실의 크기가 아니라 정치적 후유증에 있었다. 무역 감소분에서 관세가 차지한 몫은 크지 않았지만, 각국이 “우리는 이제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그 결론이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지가 2편의 주제다. 1932년 영국은 80여 년 지켜온 자유무역 원칙을 스스로 접었고, 세계는 서로를 배제하는 몇 개의 블록으로 갈라졌다.

지금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2026년에도 같은 문장이 돌아다닌다. “관세를 올리면 1930년대가 반복된다.”

이 문장은 절반만 맞다. 그리고 절반이 틀린 방식이 위험하다.

관세율 숫자에만 시선을 두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1930년대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관세가 몇 퍼센트였느냐가 아니라, 각국이 무역을 경제 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로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관세는 그 전환의 계기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켜봐야 할 것은 관세율표가 아니라, 그 관세가 어떤 언어로 정당화되는지다. “우리 산업을 보호한다”에서 “우리 안보를 지킨다”로 말이 바뀌는 순간, 되돌리는 비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이야기는 3편에서 하겠다. 미국은 실제로 1934년에 관세를 되돌리기 시작했고, 1936년에는 금본위제 문제까지 정리됐다. 그런데도 블록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전쟁까지 갔다. 왜 그랬는지가 이 시리즈의 진짜 질문이다.


시리즈 안내

이 글은 특정 종목·자산에 대한 투자 조언이 아니다. 공개된 역사 연구와 통계를 바탕으로 한 해설이며, 인용된 수치는 각 출처 기준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