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AI 붐에 가장 날카롭게 반대하는 세력은 러다이트도, 인공지능 안전주의자도 아니다. 민주사회주의 진영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세우는 무기는 이념 구호가 아니라 주민들이 매달 받아 드는 전기요금 고지서다.

이 글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미국 진보 진영은 AI 붐을 ‘기술 혁명’이 아니라 비용은 사회화되고 이익은 사유화되는 전형적인 인프라 붐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공격 지점을 GPU 성능이나 AGI 위험이 아니라 ①전기요금 ②일자리 ③소유권이라는 세 개의 지갑 문제로 옮겼다. 이 프레임 전환이 실제로 먹히고 있다는 것이 2026년의 정치적 사건이다. 데이터센터 반대는 지금 미국에서 민주사회주의자와 MAGA 농촌 유권자가 겹치는 드문 교집합이 됐고, 11월 중간선거의 실질 쟁점으로 올라섰다.

미리 밝혀두자면 이 글은 그 주장이 옳다고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핵심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도 여럿이고, 진보 진영이 내놓은 처방에는 미국사 안에 이미 뼈아픈 반례가 있다. 다만 이 진영이 무엇을 어떻게 문제 삼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아둘 가치가 있다. 한국도 조건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Dirt road leads through fields with power lines and windmills. Photo by Jay Heike on Unsplash

시작은 이념이 아니라 전기요금 고지서였다

미국 동부 13개 주와 워싱턴 D.C.를 아우르는 최대 전력시장 PJM에는 ‘용량시장(capacity market)‘이라는 제도가 있다. 발전소에 “필요할 때 전기를 낼 수 있게 대기하고 있어 달라”며 미리 값을 치르는 시장이다. 여기서 벌어진 일이 미국 진보 진영에게 결정적인 탄약을 제공했다.

PJM 용량시장 낙찰가 — 2년 만에 약 11배 (높을수록 요금 부담↑) 달러/MW-day 0 100 200 300 $28.92 2024/25 $269.92 2025/26 $329.17 2026/27 자료: PJM 기저용량경매(BRA) 결과 · S&P Global · 2026/27은 FERC 승인 상한가
용량시장 낙찰가는 결국 소비자 요금으로 전가된다. 총 조달비용도 22억 달러에서 147억 달러로 뛰었다.

2024/25 인도연도 경매에서 MW-day당 28.92달러였던 낙찰가는 2025/26 경매에서 269.92달러로 뛰었다. 833% 인상이다. 이듬해인 2026/27 경매는 329.17달러로 다시 올랐는데, 이 값은 시장이 자연스럽게 도달한 가격이 아니라 FERC(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승인 상한에 그대로 붙어 막힌 값이다. 상한이 없었다면 388.57달러였다. 총 조달비용 기준으로는 22억 달러에서 147억 달러로 한 해 만에 7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만으로는 전력시장 기술 이슈처럼 보인다. 진보 진영이 한 일은 이 숫자에 책임자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PJM의 독립시장감시자인 모니터링애널리틱스(Monitoring Analytics)는 2025/26 경매 인상분의 약 63%가 데이터센터 수요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PJM 권역 고객에게 93억 달러의 추가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추산했다.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이 추정을 인용해 확산시켰다. 환경단체 NRDC는 별도로, 규제 당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2033년까지 1,630억 달러의 추가 부담이 쌓이고, 반대로 대안 조치를 도입하면 2032년까지 약 1,000억 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평균 가구 기준으로는 2028년까지 급등 이전 대비 월 70달러 수준의 인상이다.

추상적 통계는 이 지점에서 생활의 언어로 번역된다. 워싱턴 D.C. 지역 전력회사 Pepco의 주택용 고객은 2025년 6월부터 월평균 21달러가 올랐는데, D.C. 소비자변호국 추정으로 그중 약 10달러가 용량시장 가격 급등분이었다. 버지니아의 한 주민은 전달 100달러 남짓이던 요금이 2026년 1월 281달러로 찍힌 고지서를 공개했다.

미국 주택용 전기요금(7월 기준) — 소매 요금은 완만하게 오른다 센트/kWh · 축은 0부터 (절단 없음) 0 5 10 15 13.72 2021년 7월 16.61 2024년 7월 17.47 2025년 7월 자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주택용 평균 전력 판매가격
축을 자르지 않고 그리면 소매 요금 곡선은 이 정도다. 앞 그래프의 용량시장 폭등과 이 완만함 사이의 간극이, 뒤에 나올 논쟁의 핵심이다.

전국 평균만 보면 인상 폭은 극적이지 않다. EIA 기준 미국 주택용 전기요금 평균가는 2020년에서 2025년 사이(연평균 기준) 약 31% 올랐고, 2025년 한 해로 좁히면 7.1% 상승했다. 진보 진영의 화력이 집중되는 곳은 평균이 아니라 국지적 편차다. 컨슈머리포트는 블룸버그 분석을 인용해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북버지니아 이른바 ‘데이터센터 골목(Data Center Alley)’ 일대의 전력 가격이 최근 5년간 267% 뛰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 수치는 가정용 소매 요금이 아니라 해당 지역 전력 가격 지표라는 점은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어쨌든 여론은 이미 넘어갔다.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7명이 자기 동네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데 반대했고, 폭스뉴스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데이터센터 반대가 70 대 30으로 찬성을 눌렀다. 이 주장이 진보 진영에게만 먹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0년 안에 1억 개” — 샌더스가 꺼낸 노동 프레임

두 번째 축은 일자리다. 버니 샌더스가 간사를 맡고 있는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HELP) 민주당 실무진은 「빅테크 과두의 노동자 대상 전쟁(The Big Tech Oligarchs’ War Against Workers)」 보고서에서 AI가 향후 10년간 미국 일자리를 거의 1억 개 대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숫자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말해두는 편이 낫다. 추정치는 위원회 실무진이 ChatGPT에 직군별 대체 전망을 물어 산출한 것이다. 검토한 20개 직군 중 15개에서 절반 이상이 대체될 것이라는 답이 나왔고, 방법론 자체가 곧바로 비판의 표적이 됐다. 미국기업연구소(AEI)는 “AI와 불평등에 관한 데이터를 무시했다”고 반박했고, 렉싱턴연구소의 폴 스타이들러는 아예 “둠 캠페인”이라고 불렀다. 이 대목에서 진보 진영의 수치는 취약하다.

그럼에도 샌더스가 논쟁을 끌고 가는 방식은 영리하다. AI 기업 CEO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다.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는 2026년 1월 에세이 「기술의 사춘기(The Adolescence of Technology)」에서 AI가 “실업 상태이거나 매우 낮은 임금을 받는 하층계급(an unemployed or very-low-wage underclass)“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우려했다. 업계 최고 낙관론자조차 부인하지 않는 리스크라는 구도를 만드는 셈이다.

샌더스가 제시하는 대응책은 AI를 막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이득의 분배 방식을 바꾸는 것에 가깝다.

정책내용겨냥하는 문제
로봇세자동화로 노동자를 대체하는 대기업에 과세, 세수를 실직 노동자에게 배분대체의 이익이 자본에만 귀속되는 구조
주 32시간제임금 삭감 없이 초과근무 기준을 40→32시간으로생산성 향상분의 시간 환원
이사회 노동자 참여·종업원 소유 확대미국 종업원소유은행 신설, 이익 공유 의무화의사결정 배제
자사주 매입 금지잉여현금의 주주 환원 차단이익의 금융적 유출

주 32시간제 법안은 초과근무 산정 기준을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낮추고, 사용자가 줄어든 시간만큼 임금·복리후생을 깎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구조다. AI 이전부터 있던 의제지만, 샌더스는 이를 AI 생산성 논쟁에 다시 연결시켰다. “기계가 일을 더 한다면 사람은 덜 일해야 한다”는 오래된 명제다.

자코뱅의 국유화론 — “구제금융을 준다면 소유권을 가져와라”

세 번째 축이 가장 이념적이고, 동시에 가장 파괴력이 크다.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 매체 자코뱅(Jacobin)은 2026년 7월 9일 더스틴 과스텔라의 「인공지능 국유화를 위한 변론(The Case for Nationalizing Artificial Intelligence)」을 실었다. 논지는 두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지금은 버블이다. 과스텔라는 올해에만 7,000억 달러가 이 산업에 투입될 예정이고 AI 관련 주식이 미국 증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투기적 버블, 어쩌면 역사상 최대의 버블을 시사한다”고 규정했다.

둘째 — 그리고 이것이 핵심이다 — 버블이 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인공지능은 인류의 집단적 노동을 약탈해 만들어졌다. 대중이 AI를 만들었으니, 소수 억만장자가 아니라 대중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갈수록 가능성이 높아 보이듯 납세자가 AI 산업을 구제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공적 구제금융의 대가는 국유화여야 한다.

이 논리의 설계는 2008년을 겨냥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소유권과 통제권은 가져오지 않았고, 그 결과 위기를 만든 주체들이 위기 이후에도 같은 자리에 남았다. 진보 진영은 AI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사전 포석을 지금 깔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 주장이 반(反)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AI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AI를 공적 인프라로 다루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진보 진영 내부의 균열이 시작되는데, 그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System with various wires managing access to centralized resource of server in data center Photo by Brett Sayles on Pexels

말에서 제도로 — 모라토리엄 법안과 지방정부의 반란

프레임이 실제 제도로 전환된 것이 2026년의 가장 큰 변화다.

2026년 3월 25일,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하원의원은 **AI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 법안(Artificial Intelligence Data Center Moratorium Act)**을 발표했다. 신규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전국 단위로 일시 중단하되, 연방 차원의 AI 입법이 통과되어야 중단이 해제되는 구조다. 적용 대상은 20MW를 초과하고 20kW 이상 액체냉각 랙을 쓰는 시설로, 사실상 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정조준한다. 6월에는 AOC가 하원판 법안을 발의하면서 ICE(이민세관단속국)와 AI 기업의 감시 협력, 딥페이크 남용,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을 근거로 들었다.

상원의원실이 밝힌 해제 조건은 세 가지다.

해제 조건내용
AI 안전성AI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음을 담보하는 연방 차원의 보호장치 마련
경제적 이익의 귀속AI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이익이 노동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
요금·환경·지역사회 보호전기·공공요금 인상과 환경·지역사회 피해를 막는 장치

출처: Sanders 상원의원실 보도자료 (2026-03-25), Axios

연방 법안은 현 의회 구성상 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런데 진짜 변화는 아래에서 일어났다. 규제 리스크의 발생지가 워싱턴이 아니라 주 의회와 지방의회로 옮겨간 것이다.

가장 무게 있는 사건은 뉴욕주다. 2026년 6월 4일 뉴욕주 의회는 최대수요 20MW 이상 대형 데이터센터의 인허가를 1년간 중단하는 ‘책임 있는 데이터센터 개발법’을 상원 44대 16, 하원 102대 39로 통과시켰다. 다만 캐시 호컬 주지사는 이 법안에 서명하는 대신, 7월 14일 행정명령 제62호로 대형 데이터센터에 대한 주 환경보전국(DEC) 인허가를 1년간 중단시켰다. 주 단위 모라토리엄으로는 미국 첫 사례다. 법안이 담았던 환경영향 보고서 제출과 에너지효율·투명성 기준은 아직 발효되지 않았고, 호컬은 서명 여부를 “복잡한 사안”이라며 미뤄둔 상태다. 행정명령은 후임 주지사가 거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뉴욕 사례는 제도화의 완성이 아니라 그 문턱을 보여준다.

도시 단위에서는 시애틀이 상징적이다. 2026년 6월 9일 시애틀 시의회는 대형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에 대한 1년 모라토리엄을 9대 0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최초는 아니다 — 그 시점에 이미 덴버·뉴올리언스·미니애폴리스를 포함해 70곳이 넘는 시·카운티가 비슷한 조치를 두고 있었다. 시애틀의 의미는 모라토리엄을 도입한 미국 도시 가운데 가장 크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는 100곳이 넘는 지방정부가 모라토리엄을 도입했고, 2026년 첫 6주 동안에만 주 차원의 데이터센터 관련 법안이 300건 넘게 발의됐다. 한때 최대 규모 세제 혜택을 놓고 경쟁하던 주들이 그 인센티브 제도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민주사회주의자당(DSA)은 이 흐름을 조직적으로 밀고 있다. 기존 그린뉴딜 캠페인 위원회에서 새로운 생태사회주의 위원회로의 이행을 관장하는 ‘생태사회주의 이행위원회(Ecosocialism Transition Committee)‘가 올여름 전국 반(反)데이터센터 캠페인을 조직했고, 6월 21일에는 전국 지부 조직가들이 참여하는 대중 콜을 열었다. 지부별 전선도 다르다. 시애틀 지부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시설을 겨냥한 주 단위 모라토리엄을, 메트로 D.C. 지부는 메릴랜드·버지니아 시설의 요금 인상 책임 추궁과 전력 인프라의 공동체 통제를, 애리조나 지부는 데이터센터 개발업체에 협조적인 투손전력(Tucson Electric Power) 자체를 공영화하는 방안을 밀고 있다.

100년 전에 같은 싸움이 있었다

지금의 구도는 미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정확한 재방송에 가깝다.

1920년대 미국 전력 산업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1920년대 초 4,000개의 민간 유틸리티가 3,000개의 공영 유틸리티와 영역을 놓고 경쟁했고, 1926년 한 해에만 1,000건의 합병이 일어났다. 민간 유틸리티들은 멀리 떨어진 지주회사(holding company)를 세워 지역 회사의 이익을 빨아올렸고, 대공황 이전 요금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수백만 명 앞에서 가스·전기·전화 요금을 유지하거나 올렸다. 통합은 실제로 이기고 있었다. 1920년대 초 3,000개를 넘던 시영 전력 시스템은 1930년 약 1,900개로 줄었다. 원격의 자본이 지역 인프라를 소유하고, 비용은 지역 주민이 낸다 — 100년 뒤 DSA가 데이터센터를 두고 하는 말과 문장 구조가 같다.

그리고 이 구조는 실제로 터졌다. 시카고의 새뮤얼 인설은 지주회사를 층층이 쌓아 85개 기업, 40억 달러 규모의 전력 제국을 세웠지만 대공황이 닥치자 피라미드는 1932년에 무너졌고, 인설 본인은 그해 6월 유럽으로 달아났다(이후 세 차례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주목할 것은 규제가 붕괴보다 뒤에 왔다는 사실이다. 연방거래위원회는 1928년 상원 결의로 지주회사 조사에 착수해 7년간 100권 가까운 보고서를 냈고, 그 결과물인 1935년 공익사업지주회사법은 통합되지 않은 지주회사 구조를 해체하도록 하는 이른바 ‘사형선고 조항’을 담았다. 자코뱅이 지금 “버블이 터진 뒤가 아니라 터지기 전에 조건을 정해두자”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번에는 규칙이 도착했을 때 손실 배분이 이미 끝나 있었다.

당시의 대응도 지금 진보 진영이 꺼내는 처방과 겹친다. 1930년 11월 4일,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유권자는 같은 날 투표로 농촌 지역이 공영 전력구역을 세울 길을 열었다. 워싱턴에서는 주 그레인지(농민단체)가 1929년 6만여 명의 서명을 모아 발의안을 올렸는데 주의회가 이를 처리하지 않자 안건이 주민투표로 넘어가 54% 찬성으로 통과됐다(발의안 제1호, 1931년 시행). 오리건은 같은 날 헌법개정 발의로 ‘주민전력구역(People’s Utility District)’ 설립 근거를 만들었다. 의회가 아니라 주민이, 그것도 농촌이 직접 통과시킨 제도였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이어 1933년 루스벨트는 뉴딜 프로그램의 하나로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를 세웠다. 연방이 소유하는 전력회사이자 지역 개발기구였던 TVA는 지금도 미국 최대의 공영 전력 공급자로 남아 있다.

오늘날 애리조나 DSA가 투손전력 공영화를 말하고 메트로 D.C. DSA가 “전력 인프라의 공동체 통제”를 말할 때, 이들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미국 안에 이미 존재하는 제도적 선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올라가면 노동 쪽 계보도 있다. 1811년 영국 노팅엄셔에서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은 흔히 ‘기계 파괴자’로 희화화되지만, 역사가들의 해석은 다르다. 이들이 부순 것은 기계 일반이 아니라 숙련 임금 체계와 관습적 노동 조건을 우회하려고 도입된 특정 기계들이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도입되는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2026년 미국 진보 진영이 “AI를 멈추자”가 아니라 “누가 소유하고 누가 비용을 내는가”를 묻는 방식은, 러다이트를 조롱하는 통념이 아니라 러다이트의 실제 쟁점 쪽에 훨씬 가깝다. 실제로 『더 네이션』은 올해 「AI가 목덜미에 숨을 뿜는 지금, 러다이트 르네상스의 시간」이라는 기사에서 이 계보를 명시적으로 소환했다.

이 역사적 반복이 주는 실용적 함의가 있다. 1920년대 전력 갈등은 규제(PUHCA)와 공적 소유(TVA·PUD)라는 두 갈래로 정리되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다. 지금의 데이터센터 갈등도 한두 번의 법안으로 끝날 성격이 아니라는 뜻이다.

반론 — 진보 진영 주장의 약한 고리는 어디인가

균형을 위해 반대편 근거를 짚어야 한다. 이 진영의 주장에는 실제로 취약한 지점이 여러 군데 있고, 그중 일부는 꽤 치명적이다.

첫째, 인과관계가 진보 진영 주장만큼 단순하지 않다. PJM 낙찰가 급등을 다룬 S&P Global의 분석은 상승 원인을 데이터센터 수요만이 아니라 예비율(IRM) 상향, 자원별 유효부하기여도(ELCC) 산정 방식 변경 등 시장 규칙 변경에 상당 부분 돌린다. 더 나아가 데이터센터와 요금 인상 사이의 통계적 연결 자체를 부정하는 연구도 여럿이다. 2026년 3월 에너지연구소(IER)의 정책 브리프는 데이터센터 수와 현재 전기요금 사이의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으며, 데이터센터 집중도가 더 빠른 요금 인상과 유의한 관계를 갖지도 않는다고 보고했다. 2019~2024년 주별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오히려 전력 수요가 가장 크게 늘어난 주에서 요금이 더 낮게 나타나기도 했다. 럿거스대 뉴저지주정책연구소는 「데이터센터가 당신의 전기요금을 올리고 있는가? 대체로 아니다. 아직은」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가 이미 가계 전기요금을 크게 올렸다는 강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약하고 뒤섞여 있으며 그 크기도 작다고 결론지었다.

둘째, 경제적 편익이 0은 아니다. 조지아공대 셸러 경영대의 대니얼 유·이양 정 워킹페이퍼(2026년 7월)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카운티에서 고용이 약 3.5%, 임금이 5%, 사업체 수가 4.7%, 가구소득이 약 1.9%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데이터센터 입지 후 카운티 변화 — 효과는 있으나 투자 규모 대비 작다 고용 +3.5% 임금 +5% 사업체 수 +4.7% 가구소득 +1.9% 자료: 조지아공대 셸러 경영대 워킹페이퍼(Yue·Zeng, 2026)
숫자 자체는 플러스다. 쟁점은 크기와 분배 — 그리고 같은 연구가 입지 지역 전기요금 약 5% 상승도 함께 보고했다는 점이다.

건설 현장의 임금 효과도 실재한다. 용접공·배관공·전기공이 보너스를 포함해 연 10만 달러를 넘기는 사례가 보고됐고, AI 인프라 투자는 2026년 초 기준 미국 GDP의 약 0.8%를 기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케이토연구소는 아예 “데이터센터가 문제가 아니라 나쁜 정책이 문제”라며, 표적 없는 보조금과 인허가·계통접속·송전 병목을 고치면 될 일에 건설 금지로 대응한다고 비판한다.

다만 조지아공대 연구의 단서 조항이 중요하다. 효과는 투자 규모에 비하면 작았고, 분포가 불균등했다. 대도시권이 이득을 더 많이 가져갔다. 그리고 같은 연구가 입지 지역의 전기요금이 약 5% 올랐다고 보고한다. 편익과 비용이 같은 장부에 함께 적혀 있는 것이다. 덧붙이면 연구들끼리도 일치하지 않는다. 브루킹스가 소개한 대니 바하르·그레그 라이트의 별도 연구는 데이터처리업 고용이 56%, 통신업 고용이 43% 늘었지만 임금은 변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조지아공대의 임금 +5%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이 분야의 실증은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어느 쪽이든 단정적으로 인용하는 쪽이 먼저 의심받아야 한다.

셋째, 공적 소유가 요금 문제의 자동 해답은 아니다. 이것이 진보 진영 처방의 가장 약한 고리이고, 하필 반례가 DSA 시애틀 지부가 활동하는 바로 그 지역에서 나왔다. 1970년대 태평양 북서부에서는 전력 수요가 곧 폭증한다는 예측을 근거로 워싱턴공공전력공급시스템(WPPSS)이 원전 5기를 동시에 밀어붙였다. 수요는 오지 않았다. 인플레이션과 효율 개선이 겹치며 연 5%를 넘던 수요 증가율은 1980년대 1.5%로 주저앉았고, 1983년 이 기관은 22억 5,000만 달러를 갚지 못해 당시 미국 최대 규모의 지방채 디폴트를 냈다. WPPSS는 이름 그대로 공영 기관이었고, 청구서는 결국 그 지역 요금 납부자에게 갔다. 워싱턴주 납부자의 상환 의무는 2043년까지 남아 있다. 소유 구조를 바꾸는 것과, 빗나갈 수 있는 수요 예측에 수십 년치 자본을 묶는 것을 막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넷째, 진보 진영 내부도 갈라져 있다. 크게 두 갈래다. 『더 네이션』류의 러다이트 계열은 AI 확산 자체에 브레이크를 걸자는 쪽이고, 자코뱅의 국유화론은 AI는 좋으나 소유 구조가 문제라는 쪽이다. 전자는 모라토리엄으로, 후자는 공적 소유로 간다.

이 균열이 얼마나 깊은지는 자코뱅 안에서 확인된다. 과스텔라의 국유화론이 실린 2026년 7월, 같은 매체는 하겐 블릭스와 잉에보르크 글리머의 「AI 국유화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적 논거(The Socialist Case Against Nationalizing AI)」(7월 22일)를 함께 실었다. 이들의 반박은 날카롭다. “AI는 그 편익을 재분배하면 되는 중립적 기술이 아니다. 노동을 값싸게 만들고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설계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 무기다.” 샌더스식으로 지분을 공적 기금에 넘긴다고 해서 AI의 목적 자체가 바뀌지는 않으며, 진짜 필요한 것은 이윤 재분배가 아니라 탈숙련화와 노동 대체라는 기능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같은 매체가 같은 달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두 노선은 당장은 데이터센터 반대라는 공통 전선에서 만나지만, “AI가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는 정반대에 서 있다.

So What — 한국에는 무엇이 남는가

이 이야기에서 한국 독자가 가져갈 것은 미국 정치 가십이 아니라 구조적 교훈이다.

첫째, 규제 리스크의 발생지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AI 인프라의 정책 리스크는 연방·중앙정부 차원(수출 통제, 안전 규제)에서 온다고 여겨졌다. 2026년 미국이 보여준 것은 정반대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멈춘 것은 뉴욕 주지사의 행정명령이고, 시애틀 시의회이고, 카운티 조례이고, 주 의회에 쌓인 300건의 법안이다. 100년 전 워싱턴주 공영 전력구역도 주의회가 아니라 농민들의 서명과 주민투표에서 나왔다. 데이터센터 입지 판단에서 ‘지방정치 리스크’는 이제 실질적 무게를 갖는 항목이 됐다.

둘째, 전기요금은 AI 산업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이다. 진보 진영이 여론 전선에서 앞선 이유는 논리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번역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빅테크의 자본 집중”이라는 추상 명제를 “당신 고지서의 21달러”로 옮긴 순간, 이념과 무관한 유권자에게 도달했다. 앞서 봤듯 전국 단위 실증은 오히려 진보 진영에게 불리한데도 정치적으로는 진보 진영이 이기고 있다. 이것이 이 사안의 성격을 말해준다. 반대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는 쪽은 이 번역 경쟁에서 이길 언어를 아직 못 찾았다. “일자리와 세수”라는 답변이 조지아공대 데이터에서 보듯 투자 규모 대비 체감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셋째, 지금이 1920년대인지 1970년대인지 아직 모른다. 이 유비에는 빠진 변수가 하나 있다. 1920년대의 전력 수요는 실재했고 쟁점은 오직 누가 소유하고 누가 값을 치르느냐였다. 1970년대 WPPSS에서는 수요 자체가 허상이었고, 그래서 다툼은 요금이 아니라 짓다 만 설비의 청구서를 두고 벌어졌다. 지금 데이터센터 수요가 이 둘 중 어느 쪽인지는 결판나지 않았다. 같은 프로젝트가 여러 주의 여러 유틸리티 대기열에 중복으로 올라가 있고, 실제 건설되는 것보다 5~10배 많은 접속 신청이 들어온다는 업계 추정이 나온다. 전력연구원(EPRI) 조사에서도 데이터센터 신청이 최대부하의 절반을 넘는다고 답한 유틸리티 10곳 중, 5년 뒤 실제 비중이 35%를 넘을 것으로 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요금 전가 싸움은 더 근본적인 질문의 대리전이다.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수요를 근거로, 30년을 갚아야 할 설비를 지금 지어도 되는가.

넷째, 한국은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다.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계통 접속 대기 장기화, 송배전 투자 부담의 요금 반영, 지역별 전기요금 논의 — 미국이 정치화된 조건이 한국에도 거의 그대로 있다. 아직 한국에서 데이터센터가 대중적 정치 쟁점이 되지 않은 것은 요금 전가 경로가 미국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용량시장 낙찰가가 공개 경매로 튀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총괄원가에 섞여 들어간다. 그러나 그 경로가 한 번이라도 가시화되면 — 예컨대 지역별 요금 차등이 본격화되면 — 미국이 2년에 걸쳐 지나온 길을 훨씬 빠르게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진보 진영의 진단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들이 정확히 짚은 것이 하나 있다. AI 붐의 최종 청구서는 결국 누군가에게 간다. 지금 벌어지는 정치는 그 청구서를 누가 받을 것인가를 미리 정하는 싸움이다.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비용의 귀속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AI 논쟁이라기보다 인프라 논쟁이며, 그래서 100년 전 전력 갈등과 그토록 닮았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투자 조언이 아니다. 정책·시장 동향에 관한 해설이며, 인용된 수치는 각 출처 발표 시점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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