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수소 발전시장 CHPS(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가 세계 최초로 문을 연 지 1년여 만에 입찰이 전격 취소되며 재편 국면에 들어섰다. CHPS는 발전사가 수소·암모니아 기반 발전으로 일정량의 전력을 공급하도록 경쟁입찰로 보상하는 제도다. 기존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RPS)에서 수소를 떼어내 별도 시장으로 만든 것으로, 2023년 일반수소 입찰을 시작으로 2024년 청정수소까지 확대됐다. 그런데 출범 1년여 만에 멈춰 선 이 제도의 진짜 시험대는 기술이 아니라 ‘정책 신뢰도’다. 흥행 실패에서 입찰 취소, 그리고 재설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미지: 충청남도 미래산업국 에너지과 · Wikimedia Commons · KOGL Type 1
청정수소 발전시장 CHPS란 무엇인가
CHPS는 두 개의 트랙으로 굴러간다. 하나는 분산형 전원 확산을 노린 일반수소 발전시장으로, 주로 연료전지가 참여하며 거래 기간은 20년이다. 다른 하나는 탄소 배출이 없는 연료를 쓰는 청정수소 발전시장으로, 거래 기간은 15년이다. 두 시장 모두 발전사가 입찰가를 써내면 가격과 비가격 지표(연료 도입 안정성, 산업 기여도 등)를 종합해 낙찰자를 가리는 경쟁입찰 방식이다.
제도의 취지 자체는 분명하다. 수소·암모니아 발전은 초기 단가가 비싸 시장에 맡겨두면 누구도 짓지 않는다. 그래서 장기 계약으로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깔아주는’ 마중물이 필요했다. RPS와 분리해 별도 의무 시장을 만든 것도 수소를 독립된 정책 대상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였다.
세계 최초의 출발, 그러나 흥행은 실패했다
2024년 5월, 한국은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 발전 입찰시장을 열었다. 타이틀은 화려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정부가 제시한 도입 가격에 맞춰 입찰에 응한 곳이 사실상 한국남부발전 한 곳뿐이어서, 최종 공급량은 750GWh로 결정됐다. 당초 정부가 그렸던 연 6,500GWh의 **11.5%**에 불과한 규모다.
원인은 단순하다. 단가다. 청정수소·암모니아의 연료 확보 비용이 높아 발전사들이 정부 가격으로는 수익을 맞출 수 없었다. 제도라는 ‘문’은 열렸지만 경제성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세계 최초라는 상징성과 시장의 실제 반응 사이의 간극이, 이때 이미 드러나 있었다.
Photo by Federico Beccari on Unsplash
2040 탈석탄과 충돌해 멈춰선 입찰
2025년, 정부는 청정수소 시장을 3,000GWh 규모로 다시 열겠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17일, 한국전력거래소는 입찰을 전격 취소했다. 새로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2025년 10월 환경부가 에너지 기능을 흡수해 통합)의 정책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핵심 충돌 지점은 시간이다. ‘3년 준비 + 15년 거래’라는 계약 구조는 사업이 2040년을 넘겨 운영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2040 탈석탄 로드맵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석탄 발전에 암모니아를 섞어 태우는 석탄-암모니아 혼소다. 탄소를 줄이겠다는 명분이지만, 결과적으로 석탄 발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석탄을 붙들어 둘 수 있다는 모순, 이것이 취소의 본질이었다.
2026년 ‘CHPS 2.0’은 어디로 가나
약 1년의 재설계를 거쳐, 2026년 들어 입찰 재개 방향이 잡히고 있다. 6월 선거 이후 재공고하는 쪽으로 검토가 진행됐고, 큰 방향은 석탄·암모니아 혼소를 배제하고 수소 전소, LNG-수소 혼소 가스터빈, 연료전지 중심으로 시장을 다시 짜는 ‘CHPS 2.0’이다.
트랙별 운명은 갈린다. 연료전지가 중심인 일반수소는 산업 생태계 보호를 이유로 국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만큼 재개 가능성이 높다. 반면 수소 혼소 가스터빈은 불확실성이 크다. 청정수소를 국내 그린수소로만 한정할 경우 생산지인 제주 외에는 사실상 공급이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청정수소 물량도 당초 계획 대비 축소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결국 남은 쟁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혼소를 포함할 것인가, 둘째 청정수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국내 그린수소 한정 여부), 셋째 물량을 얼마로 할 것인가다. 연내 재공고문에서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시장의 향방을 가른다.
두 번의 차질을 겪으며 분명해진 교훈은 하나다. 수소 발전의 발목을 잡은 것은 기술의 미성숙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 부재였다. 육성을 위해선 장기 보상이 필요한데, 그 장기 보상이 탈석탄과 충돌하는 근본 긴장을 풀지 못하면 어떤 입찰도 다시 멈출 수 있다. CHPS 2.0의 성패는 결국 ‘청정수소를 얼마나 싸게, 어디서 확보하느냐’라는 경제성 설계와, 한 번 흔들린 정책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글은 공개된 정책·시장 동향에 대한 일반적 해설이며, 특정 기업의 비공개 정보나 투자 권유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댓글
✍️ 편집자 모드 — 이 댓글은 공개되지 않고 편집자에게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