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제도의 축부터 바뀌고 있다. 2026년을 끝으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가 폐지되고, ESS 보급의 중심이 **‘중앙계약시장 경쟁입찰’**로 이동한다. 지금까지 재생에너지·ESS를 ‘REC 가중치’로 간접 유인했다면, 앞으로는 국가가 필요한 물량을 정해 경쟁입찰로 뽑고 장기계약으로 보상하는 구조다. 사업자 입장에서 ‘수익의 규칙’이 통째로 바뀌는 셈이라, 이 글에서 제도 변화와 숫자, 그리고 시장 전망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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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S는 왜 막을 내리나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는 발전사업자에게 일정 비율을 신재생으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고, 부족분은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사서 채우게 한 제도다. 2012년 도입 이후 재생에너지 보급을 견인했지만, REC 가격 변동성이 커 사업자의 수익 예측이 어렵고 정책 신호가 흐릿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2026년을 끝으로 RPS를 폐지하고 ‘재생에너지 계약시장(경쟁입찰)’ 중심으로 전환한다. 즉 ‘의무비율 + REC 거래’에서 **‘국가가 물량을 정해 경쟁입찰로 계약’**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RPS 종료·개편에 맞춰 2027년 이후의 입찰 운영 방식과 선정 절차는 2026년 하반기 업계·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구체화될 예정이다.
중앙계약시장 — “국가가 필요한 만큼 정해 뽑는다”
ESS 중앙계약시장은 전력거래소(KPX)가 운영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 물량 지정: 계통 안정화·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에 필요한 ESS 물량을 정부·계통 운영 관점에서 정한다.
- 경쟁입찰: 사업자들이 가격·조건으로 경쟁해 낙찰자를 가린다.
- 장기계약 보상: 낙찰 사업자는 장기계약으로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는다 → REC처럼 가격이 출렁이지 않는다.
사업자에게 이는 ‘수익 안정성↑, 대신 입찰 경쟁↑‘을 의미한다. 실제로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와 발전 공기업·EPC가 컨소시엄을 꾸려 뛰어드는 ‘수주 경쟁’이 본격화됐다.
숫자로 보는 1·2차 입찰 결과
ESS 중앙계약시장은 2025년 1차를 시작으로 이미 두 차례 진행됐다. 차수별로 규모·주관·낙찰 구도가 뚜렷이 다르다.
차수별 개요
| 구분 | 1차 (2025) | 2차 (2026) |
|---|---|---|
| 주관 | 산업통상자원부·전력거래소 | 기후에너지환경부·전력거래소(부처 개편) |
| 규모 | 약 565MW 선정 | 육지 525MW + 제주 40MW(2027년까지 구축) |
| 사업지 | 8개 지역(고흥·광양·진도·무안·영광·안좌·제주) | 7개 사업지(전남 6 + 제주 1) |
| 발표 | 2025년 7월(우선협상) | 2026년 2월 12일 |
| 열기 | 약 120개사 응찰(흥행 대폭발) | 약 1조 원 규모·비가격 평가 확대 |
| 낙찰가(배터리) | kWh당 약 30원대 | kWh당 20원대 이하로 추가 하락 |
1차(2025) — 발전 공기업 주도, 남부발전이 최대 240MW
- 한국남부발전이 국내 최대 240MW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ESS 단일 최대 규모).
- 남부발전 + BS한양 컨소시엄: 전남 광양 96MW + 고흥 96MW = 192MW
- 남부발전 + BEP 컨소시엄: 전남 진도 48MW
- 배터리 단가는 MWh당 2억 원 이하까지 하락(전년 제주 사업 약 3.5억 원 대비 대폭↓).
2차(2026) — 배터리 지형 반전, SK온이 절반 이상 수주
- 2026년 2월 12일, 전남 6곳 + 제주 1곳 = 7개 사업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2027년까지 육지 525MW·제주 40MW를 구축한다.
- 최대 이변은 배터리 공급 구도다. SK온이 전체 배터리 물량의 50% 이상을 수주하며 예상을 뒤집었다. SK온은 서산 2공장 라인 일부를 전환해 하반기 중 3GWh 규모 ESS용 LFP 배터리 라인을 구축하고, 양극재·전해액·분리막도 국내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 배터리 단가는 kWh당 20원대 이하로 1차(30원대)보다 더 내려갔다. 가격 경쟁이 과열되자 배터리 3사(LG엔솔·삼성SDI·SK온)는 정부에 **‘가격 경쟁 완화’**를 건의했고, 2차에선 비가격(기술·안전·계통) 평가 비중이 확대됐다.
두 차례 입찰만으로 약 1.1GW 규모의 ESS가 계약시장을 통해 확정됐다.
위 수치는 KPX·주관 부처 발표 및 언론 보도(전기신문·서울신문·뉴시스·비즈한국 등) 기준이며, 사업지별 세부 물량·조건은 공식 자료로 최종 확인이 필요하다.
단가 전쟁 — 배터리값이 사업을 가른다
이 시장의 진짜 승부처는 ‘가격’이다. ESS는 배터리 셀이 시스템 전체 비용의 **60~70%**를 차지해, 배터리 원가·기술력이 곧 사업 수익성을 좌우한다. 그래서 입찰이 거듭될수록 낙찰가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 구분 | 1차(2025) | 2차(2026) |
|---|---|---|
| 배터리 낙찰가(추정) | kWh당 약 30원대 | 20원대 이하 |
| ESS 시스템 단가 | MWh당 약 2억 원 이하 | 추가 하락 |
| (비교) 2024 제주 사업 | MWh당 약 3.5억 원 | — |
가격이 내려간 만큼 발주자·사업자에겐 유리하지만, 배터리 기업엔 수익성 압박이 된다. 배터리 3사(LG엔솔·삼성SDI·SK온)가 정부에 ‘가격 경쟁 완화(비가격 평가 확대)‘를 건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2차에선 기술·안전·계통 같은 비가격 평가 비중이 커졌다. 업계에선 “ESS 중앙계약시장은 단순 최저가가 아니라 ‘(국산 배터리의) 판매를 허용하는’ 장(場)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쟁점과 리스크 — 과열·중국 의존·장주기 경제성
장밋빛만 있는 건 아니다. 세 가지 쟁점이 남는다.
- 가격 경쟁 과열 → 수익성 악화: 낙찰가가 kWh 20원대까지 내려가면서 “수주해도 남는 게 적다”는 우려가 크다. 공급 과잉 국면의 저가 경쟁은 글로벌 LFP 배터리 전반의 수익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
- 중국 LFP 의존·공급 과잉: ESS의 표준 배터리인 LFP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2025년 중국 LFP 생산능력은 수요 대비 약 76% 초과였고, 연말엔 **127%**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저가 중국산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산 공급망(양극재·전해액·분리막) 확보가 시험대다. (SK온이 2차에서 서산 LFP 라인·국내 소재 조달을 내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 장주기 ESS의 경제성: 정부는 2038년까지 총 23GW 규모의 장주기 ESS 구축을 목표로 한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계통안정에 필수지만, 오래·크게 저장할수록 kWh당 경제성 확보가 숙제로 남는다.
시장 전망 — 장주기·대형화로
제도가 ‘입찰’로 정리되면서 시장의 무게중심도 장주기(long-duration)·대형 ESS로 이동한다. 태양광·풍력의 하루 단위 변동을 흡수하려면 짧게 저장했다 빼는 것을 넘어 더 오래, 더 크게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도 반등 기대가 크다. 한 업계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72.4%**가 2026년 ESS 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배경엔 두 갈래의 구조적 수요가 있다. 하나는 AI·데이터센터 전력수요 급증이다. 24시간 돌아가는 데이터센터는 안정적 전력을 요구하고, 그 변동을 메우는 완충재가 ESS다. 다른 하나는 재생에너지 변동성 보완이다. 태양광은 한낮에 몰려 남고 저녁엔 끊긴다 — 이 ‘한낮의 잉여’를 저장했다 저녁에 푸는 것이 ESS의 본업이다. 두 수요가 겹치며 ESS는 ‘있으면 좋은 보조 설비’에서 없으면 계통이 흔들리는 핵심 인프라로 격상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캐즘(성장 정체)으로 갈 곳을 찾던 국내 배터리 3사에게 ESS는 새 활로가 됐다. 2026년 벽두부터 벌어진 ‘1조 원 수주전’이 그 신호다. 다만 이 활로가 ‘박리다매의 저가 출혈’이 될지, ‘안전·품질 프리미엄이 인정받는 시장’이 될지는 앞으로의 입찰 설계에 달렸다.
So What — 누가, 무엇을 봐야 하나
- 사업자·발전사: 수익 규칙이 REC(가격 변동)에서 **장기계약(안정)**으로 바뀐다. 대신 입찰 경쟁력(가격·부지·계통연계·안전인증)이 수주를 가른다. 낙찰가가 계속 내려가는 만큼, ‘수주는 했는데 남는 게 없는’ 상황을 피하려면 원가·운영 효율이 관건이다.
- 정책·계통 당국: 2027년 이후 입찰 방식이 2026년 하반기에 확정된다 — 물량 규모·비가격 평가 기준·장주기(2038년 23GW) 요건이 다음 10년 판을 좌우한다. 최저가 경쟁만 유도하면 국산 공급망·안전이 흔들릴 수 있어, 가격과 품질의 균형 설계가 핵심이다.
- 소비자: ESS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안정의 열쇠지만, 데이터센터·ESS 투자비가 결국 전기요금에 얼마나 전가되는지가 체감 포인트다.
- 투자 관점(참고): 입찰 물량 확대는 배터리·소재·EPC·계통설비 밸류체인 전반의 수요를 뜻한다. 단, 저가 경쟁에 따른 수익성은 별개 변수다. (동향 해설이며 특정 종목 추천이 아니다.)
마치며
ESS의 진짜 변화는 ‘배터리가 싸졌다’가 아니라 **‘돈 버는 규칙이 입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RPS의 10여 년이 저물고, 국가가 물량을 정해 경쟁으로 뽑는 시대가 열린다. 2026년 하반기에 확정될 ‘2027년 이후 입찰 설계’가 앞으로 10년 ESS 시장의 방향을 가른다.
(다음 편 예고: LFP vs 전고체 — ESS 배터리 기술 트렌드를 숫자로 비교합니다.)
이 글은 공개된 제도·공고·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정리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물량·일정·수치는 조사 시점·기관에 따라 다를 수 있어 KPX·기후에너지환경부 공식 자료로 최종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KPX 입찰 공고, 전기신문·서울신문·뉴시스·비즈한국·시사저널e·배터리투데이·글로벌이코노믹·EBN·CEOSCOREDAILY 등 보도(202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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