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발전용 연료전지 분야에서 이미 세계 1위다. 2023년 국내 누적 설치량은 1,036MW로, 세계 최초로 1GW를 돌파했다. 전 세계 보급량의 절반 가까이가 이 좁은 나라에 몰려 있다(전기신문). 그런데 이 ‘조용한 1등’은 지금 가장 껄끄러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연료전지가 정말 친환경 발전인가, 아니면 도시가스를 태우는 또 하나의 화석연료 발전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 한국 연료전지 산업은 FIT와 RPS라는 보조금 사다리로 세계 1위까지 올라섰지만, 그 성장을 떠받친 연료가 천연가스(LNG)라는 사실이 이제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성은 연료비에 휘둘리고, 정부가 야심 차게 연 청정수소 입찰은 사실상 좌초했으며, ‘청정’ 딱지의 정당성마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됐다. 세계 1위가 마주한 딜레마의 실체를 도입 역사부터 순서대로 뜯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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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히스토리 — 보조금이 세운 세계 1위
연료전지는 사실 신기술이 아니다. 원리는 1839년 영국 물리학자 윌리엄 그로브(William Grove)가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전기와 물을 얻는 실험으로 처음 증명했다(Fuel cell, Wikipedia). 이후 100년 넘게 실험실에 묻혀 있던 이 기술을 되살린 건 1960년대 미국의 우주 계획이었다. 제미니·아폴로 우주선은 연료전지로 전기와 식수를 동시에 얻었다. 굴뚝도 소음도 없이 물만 배출하는 이 발전 방식이, 반세기 뒤 탄소중립 시대에 지상의 발전원으로 소환된 것이다. 한국이 세계 1위를 만든 무대가 바로 이 ‘오래된 미래’ 기술 위였다.
한국 발전용 연료전지의 뿌리는 보조금 제도에 있다. 시작은 2006년 도입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다.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정부가 정한 고정 가격으로 사주는 이 제도 아래, 2006~2011년 연료전지가 국내에 처음 뿌리를 내렸다. 이어 2012년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RPS는 대형 발전사에 전체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채우도록 강제하고, 그 이행 수단으로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거래하게 한 제도다(한국에너지공단).
여기서 연료전지가 특별 대우를 받았다. 태양광·풍력보다 높은 REC 가중치(연료전지 2.0)가 부여되면서, 발전사 입장에서 연료전지 1kWh는 태양광 여러 kWh와 맞먹는 ‘의무 이행 실적’이 됐다. 좁은 국토, 24시간 균일한 출력, 도심 인근 설치가 가능한 분산전원이라는 장점까지 맞물리며 보급이 폭발했다. 설치량은 2018년 약 300MW에서 2020년 605MW, 2022년 879MW, 2023년 1,036MW로 5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뛰었다. 요컨대 한국의 세계 1위는 기술 우위라기보다 정책이 만든 시장의 산물이다. 이 출발점을 기억해두는 게 중요하다. 산업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이 유독 연료전지에 집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국토는 좁아 태양광·풍력을 대규모로 깔 땅이 부족하다. 24시간 균일하게 돌고 도심 인근에 세울 수 있는 연료전지는, 재생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한국이 ‘분산전원’과 ‘수소경제’라는 두 목표를 한 번에 잡을 카드로 여겨졌다. 세계가 파리협정(2015) 이후 수소경제 로드맵 경쟁에 뛰어들던 흐름 속에서, 한국은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으며 그 판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1위 보급량은 이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자, 지금 딜레마의 뿌리이기도 하다.
사업 현황 — 두산·SK·현대의 삼파전
시장 규모가 커지자 국내 기업들이 각축을 벌인다. 대표 주자는 두산퓨얼셀이다. 인산형 연료전지(PAFC) 연 275MW,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연 50MW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미국 블룸에너지와 SK가 손잡은 블룸SK퓨얼셀은 SOFC를 연 200MW 규모로 생산한다(전자신문). 여기에 HD현대 계열까지 차세대 SOFC 시장을 노리며 뛰어들어, 발전용 연료전지는 몇 안 되는 ‘한국 기업이 세계를 선도하는’ 에너지 하드웨어 분야가 됐다.
기술 방식은 크게 세 갈래다. 인산형(PAFC)은 상용화가 가장 앞서 국내 보급의 주력이었고, 용융탄산염형(MCFC)은 대용량에 강점이 있으며, 고체산화물형(SOFC)은 발전효율이 가장 높아 차세대 주류로 꼽힌다. 공통점은 대부분 도시가스(LNG)에서 수소를 뽑아내(개질) 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뒤에서 다룰 ‘화석연료 논란’의 씨앗이다. 겉보기엔 굴뚝 없는 깨끗한 발전이지만, 원료를 거슬러 올라가면 천연가스가 있다.
주목할 흐름은 수요처의 변화다. 최근 두산퓨얼셀은 도시가스사·지역사회와 손잡고 에너지 자립형 발전 모델을 추진하는 등, 대형 발전소용을 넘어 분산전원·건물용으로 판을 넓히고 있다. 특히 AI 확산으로 폭증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4시간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연료전지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햇빛·바람이 없을 때 발전 중단)을 메우는 ‘기저형 분산전원’으로서의 쓰임새가 부각되는 것이다. 하드웨어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에는 기회지만, 그 수요를 받아낼수록 ‘무슨 연료를 쓰느냐’는 질문은 더 무거워진다.
경제성 — 연료비에 휘둘리는 구조
세계 1위라는 타이틀에도 업계는 늘 수익성을 걱정한다. 이유는 원가 구조에 있다. 연료전지 발전 사업자의 수익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전력 도매가격(SMP)이고, 다른 하나는 REC 판매 수입이다. RPS 제도에서 REC의 설계 원리는 대략 **‘적정 발전원가 = SMP + REC 가격’**이다. 즉 SMP가 낮으면 REC가 그 공백을 메우고, SMP가 높으면 REC가 낮아져 총수입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짜여 있다(전기저널).
다만 이 설계는 어디까지나 의도이고, 실제로는 현물 REC가 SMP와 함께 오르내리며 음의 상관이 흔들리는 국면도 있다. 그럴 때 사업자의 총수입은 제도가 상정한 수준보다 출렁인다.
문제는 비용 쪽이다. 연료전지는 원료인 도시가스를 계속 사와야 하는 발전원이다. 태양광·풍력이 한 번 지으면 연료비가 ‘0’인 것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원가가 직격탄을 맞는다. 실제로 2021년 국제 가스가 급등기에는 연료비가 한 해에만 20%가량 뛰며 사업자들의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에너지경제). 여기에 CHPS 도입을 앞두고 연료전지 REC 가중치가 2.0에서 1.9로 소폭 하향되면서 보조의 강도도 조금씩 조여지고 있다(가스신문).
정리하면 연료전지의 경제성은 ‘보조금(REC)으로 지탱하고, 연료비(LNG)에 흔들리는’ 구조다. 이 구조는 두 개의 취약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보조가 줄면 수익이 무너지고, 가스값이 오르면 원가가 무너진다. 산업이 자생력을 가지려면 결국 이 두 변수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출구로 제시된 것이 바로 ‘청정수소로의 전환’과 CHP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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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PS — 세계 최초로 열었지만 좌초한 청정수소 입찰
정부의 해법은 제도로 시장을 다시 짜는 것이었다. 2023년 6월 9일, 한국은 세계 최초로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열었다(수소법 제25조의6 근거). 다만 첫해에 문을 연 것은 연료전지 중심의 일반수소 시장이었고, 그 상위 목표인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의 청정수소 입찰은 이듬해인 2024년 5월에야 개설됐다(정책브리핑). CHPS는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사업자에게 생산 전력의 일부를 청정수소로 채우도록 의무화하고, 그 전기를 경쟁입찰로 사주는 구조다(전기저널).
시장은 두 갈래로 나뉜다. 아래 표처럼 성격이 다르다.
| 구분 | 일반수소 발전시장 | 청정수소 발전시장 |
|---|---|---|
| 개설 | 2023년 (연 1,300GWh, 상·하반기 분할) | 2024년 |
| 중심 연료 | 연료전지(부생·추출수소 등) | LNG-수소·석탄-암모니아 혼소 |
| 청정성 기준 | 청정도 무관 | 탄소배출 기준 등급 부여 |
| 사업 준비기간 | 계약 후 24개월 | 계약 후 36개월 |
출처: 전력거래소·전기저널(2024). 일반수소는 기존 연료전지, 청정수소는 대형 혼소발전 중심.
야심 찬 설계였지만 청정수소 입찰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2024년 첫 청정수소 입찰에서 정부가 내놓은 물량 6,500GWh 가운데 단 750GWh(약 11.5%)만 낙찰됐다. 5개 응찰 기업 중 한국남부발전 한 곳만 뚫었고, 나머지는 정부가 정한 가격 상한선을 맞추지 못했다(한국일보). 암모니아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구조상 청정수소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 상한가가 비현실적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시장을 열었다가 세계적 망신을 당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2025년, 판 자체가 흔들렸다. 이재명 정부는 2025년 청정수소 발전 경쟁입찰을 공고 마감일에 전격 취소했다. 낙찰 시 석탄발전소가 15년 이상 가동되도록 설계된 제도가 ‘2040년 탈석탄’이라는 국정과제와 정면충돌한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낙찰된 삼척그린파워 물량마저 공급기간 단축을 협의 중이다(뉴스타파). 문재인 정부에서 구상해 윤석열 정부에서 구체화된 청정수소 발전 구상이, 정권 교체와 함께 제동이 걸린 셈이다. 제도의 불확실성 자체가 산업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
‘화석연료 취급’ 논란 — 청정이라는 이름의 무게
이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국내 연료전지는 대부분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얻는다. 이렇게 화석연료에서 뽑은 수소를 ‘그레이수소’라 부르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즉 굴뚝만 없을 뿐, 연료전지 발전에도 탄소발자국이 찍힌다. 그래서 태양광·풍력 등 다른 재생에너지 업계에서는 “탄소를 배출하는 연료전지를 재생에너지와 같이 묶어 REC를 발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을 오래 제기해왔다(가스신문).
논란은 CHPS로 옮겨붙었다. 청정수소를 표방한 입찰이 실제로는 석탄-암모니아 혼소, LNG-수소 혼소처럼 화석연료 기반 발전의 수명을 늘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청정수소 입찰제도가 국민의 환경권·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까지 청구했다(기후솔루션). ‘청정(clean)‘이라는 라벨이 붙었지만, 그 실체가 정말 청정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다는 뜻이다.
이 논란의 배경과 CHPS 제도의 세부 쟁점은 본지가 앞서 정리한 청정수소 발전 현황 분석에서도 다룬 바 있다. 핵심은 ‘청정수소’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의 기준선 다툼이다. 한국의 청정수소 인증제(K-청정수소)는 수소 1kg을 만들 때 나오는 온실가스가 4kgCO₂eq 이하면 청정수소로 인정하고, 배출량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나눈다(에너지신문). 미국(4kg)과 같고 EU(3.38)·일본(3.4)과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 기준을 느슨하게 잡으면 천연가스에 탄소포집을 결합한 블루수소·암모니아까지 ‘청정’ 대접을 받고, 엄격하게 잡으면 당장 조달 가능한 물량이 급감한다는 점이다. 2024년 입찰이 11.5%에서 멈춘 것도 이 딜레마의 산물이다.
여기엔 균형 잡힌 시선도 필요하다. 연료전지 옹호론의 핵심은 ‘효율’과 ‘분산’이다. 같은 LNG를 태우더라도 연료전지는 발전과 함께 나오는 열을 회수해 종합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고, 대형 화력처럼 송전망에 의존하지 않는 분산전원이라 송전 손실과 갈등이 적다. 미세먼지·질소산화물 배출도 연소 방식보다 현저히 낮다. 문제는 이 장점들이 ‘탄소 배출 제로’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결국 연료전지의 미래는 원료 수소를 얼마나 빨리 그린(재생에너지 기반)·블루(탄소포집 결합)수소로 갈아끼우느냐에 달렸다. 하드웨어(연료전지)는 준비됐는데, 그 안에 흘려보낼 깨끗한 수소의 공급망이 아직 없다는 것 — 이것이 논란의 본질이다.
So What — 하드웨어 1위에서 생태계 1위로
한국 연료전지 산업의 현실은 냉정하게 요약된다. 하드웨어 보급은 세계 1위지만, 그 하드웨어를 돌릴 ‘깨끗한 연료’와 ‘지속가능한 제도’는 아직 1위가 아니다. 세계 최초로 1GW를 넘겼고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 입찰을 열었지만, 그 입찰은 11.5% 낙찰로 멈췄고 이듬해엔 취소됐다. ‘세계 최초’의 타이틀만으로는 산업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이 사이클이 보여준다.
그렇다면 길은 어디에 있나. 첫째, 연료의 전환 로드맵을 제도가 명확히 깔아줘야 한다. 그린·블루수소가 그레이수소를 대체할 시점과 가격 경로를 예측 가능하게 제시해야, 기업이 설비 투자와 공급계약을 설계할 수 있다. 청정수소 단가가 비싸다는 건 상한가를 낮추면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초기 시장을 열어주는 마중물 설계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둘째, 정책의 일관성이 곧 산업 경쟁력이다. 정권마다 CHPS의 방향이 뒤집히면, 24~36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한 사업자는 투자를 미룰 수밖에 없다. 탈석탄 목표와 수소경제 육성은 상충하는 게 아니라 순서와 조건을 정교하게 설계하면 양립할 수 있는 과제다.
셋째, 강점을 세계 시장으로 밀어내야 한다. 국내 보급에만 기대면 연 200MW짜리 좁은 입찰 물량을 두고 기업들이 소모전을 벌이게 된다. 두산·블룸SK·HD현대가 쌓은 제조 역량은 데이터센터 전력난 등으로 분산전원 수요가 커지는 세계 시장에서 더 큰 무대를 가질 수 있다.
이 딜레마는 사실 낯설지 않다. 2006년 FIT로 급성장한 한국 태양광이 2011년 그 사다리(FIT 폐지·RPS 전환)가 걷어차이며 한 차례 휘청였듯, 보조금으로 세운 산업이 정책 변화에 흔들리는 일은 한국 신재생 정책사에서 15년 만에 되풀이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하드웨어에서 세계 1위를 쥔 채 그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연료전지는 한국이 드물게 하드웨어로 세계를 앞선 에너지 분야다. 그 우위를 ‘화석연료 논란’에 갇힌 채 소진할지, 아니면 청정수소 생태계까지 끌어올려 진짜 1위로 완성할지 — 지금의 딜레마가 그 갈림길이다. 1등을 만든 것은 보조금이었지만, 1등을 지키는 것은 결국 전환의 속도가 될 것이다.
이 글은 공개된 시장·정책·기술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 분석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투자 조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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